회식 후 귀가 중 교통사고가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을까요? 대법원 2018두35391 판결을 통해 회식 산재 인정의 핵심 기준인 사업주 지배·관리, 법인카드 결제, 2차 회식의 업무관련성 판단기준을 변호사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히 분석합니다.

부서장이 "2차 가자" 했을 뿐인데, 집에 못 돌아왔습니다 — 회식과 산업재해의 경계 (대법원 2018두35391 분석)
당신의 회식은 안녕하십니까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큰 행사를 마치고 팀장이 "오늘 한잔해야지" 하면, 그 말은 제안이 아니라 사실상 통보입니다. 1차가 끝나면 어김없이 "2차는 노래방이다"라는 선언이 따라옵니다. 법인카드가 꺼내지고, 부장님이 앞장서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을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따라간 2차 회식을 마치고 평소처럼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다면? 이것은 '업무상 재해'일까요, 아니면 '개인의 불운'일까요?
오늘 이야기할 대법원 2018두35391 판결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많은 직장인에게 중요한 보호막이 될 수 있습니다.

한 건설현장 팀장의 마지막 하루 — 사건의 재구성
2016년 4월 14일. 대형 건설회사 B사가 진행하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목업 품평회'가 열렸습니다.
목업 품평회라는 게 뭐냐면, 아파트 한 세대를 인테리어까지 완벽하게 마감해놓고 본사 임원진을 초청해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향후 공사 방향과 전략을 결정짓는 회사 차원의 핵심 이벤트죠. D씨는 이 현장의 안전관리팀 팀장이었습니다. 한 달 넘게 이 행사의 안전관리를 총괄하며 준비해왔고, 당일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그날 저녁, 회사는 상반기 문화행사(볼링)를 진행했습니다.
이어서 1차 회식. 현장직원 23명이 전원 참석했고, 법인카드로 결제됐습니다. 곧바로 2차. 공사부장, 과장, 그리고 D씨를 포함한 9명이 노래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법인카드 결제였습니다.
밤 10시 50분경 2차를 마친 D씨는 늘 하던 대로 전철을 탔습니다. 수인선 월곶역에서 승차해 인천논현역에서 하차한 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 왕복 11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달려오는 차량에 부딪혔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이 사건이 법적으로 복잡했는가 — 형식과 실질의 충돌
유족인 D씨의 아내가 유족급여를 청구하자,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도 공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논리는 이랬습니다. 2차 회식은 자발적 참석이었고, 귀가 중 교통사고는 회식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으며, D씨 개인의 과음과 부주의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겁니다.
일반인의 상식과 법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회사 행사를 마치고 회사가 주관한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 사고를 당했으니 당연히 업무상 재해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따지면, '자발적 참석'이라는 형식적 틀과 '개인 과실'이라는 방패막이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죠.
여기서 핵심적인 법률 용어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는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 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 모임이 사적인 영역인지 공적인 업무의 연장인지를 가리는 기준이 바로 '사업주의 지배·관리'입니다.

"이것은 업무상 재해로 볼 여지가 있다"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8두35391 판결에서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했습니다. 핵심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근로자가 회사 밖의 행사나 모임에 참가하던 중 재해를 입은 경우에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인원과 강제성 여부, 운영방법, 비용부담 등의 사정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고 또한 근로자가 그와 같은 행사나 모임의 순리적인 경로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회식 과정에서 근로자가 주량을 초과하여 음주를 한 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 재해를 입은 경우 이러한 재해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이 주목한 사실관계를 하나씩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품평회는 회사의 핵심 공식 행사였고, D씨는 그 안전관리를 한 달간 총괄한 당사자였습니다. 회식은 이 행사의 연장선상에서 사업주가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1차뿐 아니라 2차 회식까지 법인카드로 결제되었고, 공사를 총괄하는 부장이 2차에 참석했습니다. D씨는 회식 후 평소와 동일한 대중교통 경로로 귀가 중이었으므로, 순리적 경로를 이탈한 것이 아닙니다.
이 요소들을 종합하면, 2차 회식까지 포함한 전체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고, 귀가 중 사고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습니다.

법인카드 한 장이 증명하는 것
이 판결을 실무가의 눈으로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법원이 '형식'보다 '실질'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회식에서의 산재 인정 여부를 두고 가장 자주 벌어지는 공방이 있습니다. 회사 측은 "2차는 자율 참석이었다"고 주장하고, 근로자 측은 "부서장이 가자고 했는데 어떻게 안 갑니까"라고 반박하는 구도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객관적 증거입니다.
변호사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실무적 조언을 드리자면, 다음의 증거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법인카드 결제 내역(회차별), 부서장 등 상급자의 참석 사실, 회식 관련 단체 카카오톡이나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 행사 공문이나 일정표, 참석자 명단이나 사진 등입니다. 사고 발생 직후, 이러한 자료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산재 승인의 첫걸음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이 판결은 근로자의 과음이나 과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함부로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산재보험법은 사용자의 과실을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과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법의 기본 정신입니다.
이 판결이 향후 실무에 미칠 영향은 상당합니다. 특히 '2차, 3차 회식의 산재 인정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법인카드 결제, 상급자 참석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있는 한, 회차의 숫자 자체는 산재 인정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대법원이 분명히 보낸 셈이니까요.
결국 이 판결이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회식이라는 이름 뒤에는 권력관계가 있고, 그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법은 근로자 편에 서겠다는 의지입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절대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는 사라지고, 증거가 사라지면 권리도 함께 사라집니다.
김강균 변호사의 법률 TIP
"사업주의 지배·관리"란?
회식이나 행사가 사업주(또는 그 대리인인 부서장)의 주도하에 기획·진행되었고, 근로자의 참석이 사실상 강제되거나 업무의 연장선으로 인정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핵심 판단 요소는 비용 부담 주체(법인카드 여부), 참석의 강제성, 행사의 업무 관련성 세 가지입니다.
"순리적 경로"란?
회식 후 귀가할 때 평소 이용하던 교통수단과 통상적인 경로를 의미합니다. 이 경로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귀가 중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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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블로그의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판례 또는 실제 사례를 각색한 것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적 자문이 아닙니다. 법률적 조언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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